- 경북교육청, 1950년 전후 중·고교 학적부 1만 5천여 건 전수조사 중간 결과 발표
- ‘통역’ 나선 여학생부터 ‘복부 관통’ 비극까지… 지식과 목숨 바친 소년들의 기록 복원
- 임종식 교육감 “잊힌 소년들의 희생과 헌신, 후대에 영원히 전할 것”

75년 전,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장으로 향했던 소년·소녀들의 잊힌 이름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났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무명 학도병들의 삶이 빛바랜 학적부를 통해 공식 역사로 부활하고 있다.
경북교육청은 6․25전쟁 당시 참전했던 학도병들의 발자취를 발굴하기 위해 추진 중인 중․고등학교 학적부 전수조사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공식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던 학도병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왜곡되거나 묻힌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마련됐다.
교육청은 지난 2022년부터 시작한 학적부 전산화 사업 과정에서 1950년을 전후로 수많은 제적생이 발생한 점에 주목했다. 일부 기록에서 ‘학병’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드러나자, 개인의 기억 속에만 머물던 학도병의 역사를 공적 기록으로 증명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본격적인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1951년 이전 개교한 중학교와 1953년 이전 개교한 고등학교 등 총 121개교에 이른다.
현재까지 경북 지역 32개 고등학교의 학적부 1만 5,132건을 우선 조사한 결과, 학도병 참전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무려 615건이나 발굴되는 큰 성과를 거뒀다.
기록물 관리 전문가들이 학적부를 한 장씩 넘기며 확인한 기록에는 당시 학생들의 긴박했던 삶과 입대, 복귀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적부 안에는 ‘징집으로 입대’, ‘응소’, ‘학병’, ‘학도병’, ‘학도의용대원’, ‘종군’ 같은 입대 기록부터, 전장 수행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상이제대’, ‘명예제대’, ‘종군 중 복교 졸업’ 등의 단어가 생생하게 적혀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학도병들이 단순히 전투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배운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지원했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일부 학적부에는 ‘미군 제7사단 31연대 소속 콜롬비아 통변’이라는 구체적인 역할이 기록돼 있었다. ‘통변’은 오늘날의 통역을 뜻하는 말로, 당시 지역사회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학생들이 외국군과의 연락 업무나 문서 전달, 현장 소통 등에서 핵심적인 보조 역할을 수행했음을 증명한다. 이외에도 이들은 군 관련 문서 작성, 편지 대필 등 군 유지가 필수적인 영역에서 종군했다. 학적부의 짧은 문장들은 이들이 단순히 등 떠밀려 나간 소년병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배움을 실천했던 지식인 청소년이었음을 보여준다.
전쟁의 참혹함과 슬픔을 증언하는 비극적인 기록도 발견됐다. 포항고등학교의 한 학생 학적부에는 ‘출정 시 복부관통’이라는 뼈아픈 문구가 남아 있어, 어린 소년들이 감당해야 했던 전장의 공포와 희생을 짐작하게 했다.
아울러 그동안 6·25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여학생들의 참전 기록도 모습을 드러냈다. 김천여자중학교 학적부에서는 ‘현역군인으로 복무’, ‘군에 입대’라는 기록이 확인됐고, 상주여자중학교 학생의 학적부에서도 ‘종군’이라는 단어가 명확히 발견됐다. 이는 여학생 학도병들의 존재와 활약상을 입증하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중학교 학적부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북교육청은 아직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기록 복원 작업을 멈추지 않을 방침이다. 향후 조사가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학도병들의 삶과 활동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기록화하는 2차 작업에 들어간다. 구술 자료 확보, 사진 및 생활 기록 연계 등 입체적인 역사 복원 작업도 지속된다.
임종식 경북교육감은 “학적부에 적힌 짧은 단어들은 75년 전 전장에서 멈춰버린 소년들의 시간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역사적 기록”이라며 “남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시 불러줌으로써 잊혔던 소년들의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후대에 전할 수 있게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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