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흔들리고 있다. 청년 유출과 산업 공동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 위기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지역발전에 있어 대학은 여전히 핵심 동력이다. 그러나 교육과 연구라는 본령만으로는 더 이상 지역을 버티게 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 아니라, 지역을 움직이는 ‘프로 조직’이다.
이 방향은 이미 해외 여러 대학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는 실리콘밸리의 상징이지만, 그 출발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선택이었다. 1950년대 대학 부지를 기업에 임대해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를 조성하고, 교수의 창업과 겸직을 제도적으로 허용했다. 휴렛팩커드(HP)를 비롯한 초기 기업들은 교수와 학생의 연구실에서 출발했다. 중요한 점은 대학이 단순히 연구 성과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시장으로 나가는 통로를 제도화했다는 데 있다. 오늘날에도 기술이전 전담조직(OTL)을 중심으로 특허, 창업, 투자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고 있다. 스탠퍼드 모델의 핵심은 ‘기술의 시장화 제도화’에 있다.
독일의 방식은 다르지만 더욱 치밀하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전국에 분산되어 각 지역 산업 수요에 맞춘 연구를 수행한다. 자동차 산업 지역은 자율주행과 소재 기술을, 제조업 기반 지역은 공정 혁신과 스마트 팩토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기업과의 계약 연구로 충당하기 때문에 연구 주제 자체가 시장과 분리될 수 없다. 대학 교수들은 연구소와 겸직하거나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논문-기술-제품’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이 모델의 본질은 ‘수요 연동형 계약 연구’다.
일본은 보다 현실적인 해법을 택했다. 홋카이도대학교와 규슈대학교 등은 지역 산업과 결합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정주형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규슈 지역에서는 반도체 산업 정책과 연계해 대학이 기업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졸업생의 지역 정착을 위한 주거와 생활 지원까지 패키지로 제공한다. 일부 대학은 지역 기업과 공동으로 학과를 설계해 입학과 동시에 취업 경로를 확보하도록 한다. 대학이 ‘지역을 떠나는 관문’이 아니라 ‘지역에 머무는 설계자’로 기능하는 것이다. 일본 사례의 핵심은 ‘정주형 인재 설계’에 있다.
이 세 국가의 사례는 방식은 달라도 분명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대학은 더 이상 지역과 산업의 바깥에서 관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부에서 작동하는 설계자이자 실행자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구체적인 선택이었다.
우리 대구·경북의 해답도 멀리 있지 않다. 이미 충분한 산업적 잠재력과 대학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구의 미래 모빌리티와 의료·헬스케어 산업, 경북의 반도체·이차전지·농식품 산업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도 중요한 기반이다. 그럼에도 대학이 ‘인재와 기술의 공급자’를 넘어 ‘산업 설계자’로 기능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대구·경북은 대학별 산업 책임제를 도입할 시점이다. 특정 대학이 특정 산업을 맡아 지역 기업과 공동으로 연구소를 운영하고, 교육·연구·취업을 하나의 트랙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대학은 미래차 소프트웨어를, 어느 대학은 바이오 헬스 데이터 산업을, 또 다른 대학은 농식품 스마트화 기술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자신의 전공이 어떤 지역 산업과 연결되는지 알고,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대학과 함께 길러내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사람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다. 지금까지 지역 대학은 청년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외부 인재를 끌어들이는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 정책을 전략적으로 설계해 단순한 학위 취득이 아니라 지역 정착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지역 기업 취업과 연계된 비자, 주거 지원, 가족 정착 프로그램을 포함한 패키지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인구 보완을 넘어 지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 스스로의 인식 전환이다. 이제 대학은 ‘무엇을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어떤 일자리를 만들었는가’, ‘어떤 기업을 키웠는가’, ‘얼마나 많은 청년을 이 지역에 남게 했는가’에 답해야 한다. 정부 역시 재정 지원의 기준을 이 방향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대학이 바뀌면 지역이 살아난다. 그 출발은 지금, 구조를 바꾸는 결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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