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는데,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가?” 보고서는 정교했고, 회의는 충분했으며, 절차도 문제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원인을 따져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현장을 정확히 모른 채 설계된 기획’과 ‘실행을 과소평가한 조직문화’다.
필자는 29년간 대학에 몸담으며, 자치경찰제 도입 초기 대구시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현장을 총괄할 기회를 가졌다. 그 경험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일을 잘하려면 결국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단순한 방문이나 보고 청취가 아니다. 이해관계자의 언어를 듣고, 맥락을 읽고, 그들이 실제로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체감하는 과정이다.
형식적인 간담회와 보고회는 오히려 본질을 가리기 쉽다. 준비된 발언, 정제된 자료, 의도된 메시지는 조직의 체면을 지켜줄지는 몰라도 문제의 핵심에는 닿지 못한다. 오히려 격식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더 많은 것이 드러난다. 때로는 퇴근 후 막걸리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 속에서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단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현장은 자료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치경찰제 초기, 지역 치안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충분히 타당한 정책이었지만, 일선 경찰관과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행정적 효율성을 강조한 설계가 현장의 업무 부담과 충돌했고, 주민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변화를 ‘또 하나의 제도’로 받아들였다. 이후 현장 의견을 다시 수렴하고 실행 방식을 조정하자 비로소 정책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정책도 ‘어떻게 실행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서 두 번째 조건이 드러난다. 기획과 실행은 다른 역량이라는 사실이다. 조직에는 보고서를 잘 쓰고 큰 그림을 설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실행가가 있다. 문제는 이 둘을 동일시하는 데서 발생한다. “네가 기획했으니 네가 해보라”는 방식은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패 가능성을 높인다.
기획은 가능성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반면 실행은 제약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장에는 예측하지 못한 변수, 이해관계의 충돌, 끊임없는 조정이 뒤따른다. 실행가는 설득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때로는 책임을 떠안고 결단해야 한다. 이는 보고서 작성 능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역량이다.
민간기업에서도 유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 중견기업이 도입한 성과관리 시스템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실행 구조에 있었다. 기획팀은 이상적인 모델을 설계했지만, 현장 관리자들은 이를 이해하고 적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조직은 시스템을 바꾸기보다 실행 주체를 재구성하고, 교육과 권한 배분을 다시 설계한 뒤에야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성과를 만드는 것은 ‘좋은 기획’이 아니라 ‘적합한 실행’이었다.
결국 조직이 일을 잘하려면 세 가지가 맞물려야 한다. 현장을 깊이 이해하는 감각, 기획과 실행을 구분하는 인사와 구조, 그리고 실행가에게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리더십이다. 특히 최고책임자(CEO)에게는 이 세 가지를 구별해 보는 눈이 요구된다. 누가 좋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누가 그 그림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조직에는 ‘잘 만든 계획서’만 쌓이게 된다.
오늘날 공공행정도 더 이상 아마추어의 영역이 아니다. 복잡한 사회문제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일머리’로 요약되는 실천적 역량이 필수적이다. 이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며 축적된다. 그래서 더더욱 현장을 떠나서는 길러질 수 없다.
행정이든 기업이든, 성과는 결국 사람을 통해 나온다. 그리고 사람은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에 있다. 현장을 모르는 기획은 공허하고, 실행을 경시하는 조직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일을 잘하고 싶다면 답은 이미 현장에 나와 있다. 차이는 ‘봤느냐’가 아니라 ‘읽어냈느냐’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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