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 안팎에서 ‘향피제도(鄕避制度)’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광주 장윤기 사건과 일명 거제왕 사건, 대구 현직 경찰관 음주 교통사고 관련 정보 유출 의혹 등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경찰관의 연고지 근무를 제한하고 순환근무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경찰관의 비위와 수사정보 유출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자유를 직접 다루는 권력기관인 만큼 엄격한 내부통제와 윤리의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부 사건을 이유로 모든 경찰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출신 지역이나 연고지를 떠나 근무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법인지는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필자는 경찰 향피제도의 전면적인 확대·강화에 단호히 반대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전근대적 향피제도가 아니라 진정한 자치경찰이다.
향피제도는 조선시대 ‘상피제도(相避制度)’에서 유래했다. 상피제는 가까운 친족이 같은 관서에 근무하거나 서로의 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전근대 관료제의 규정이었다. 고려시대에 송나라 제도를 참작해 도입된 후 조선시대에 법전과 관례로 더욱 엄격히 운영됐다. 혈연과 혼인, 학연, 지역적 연고가 공직의 공정성을 크게 좌우하던 시절에는 나름의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향피제도는 이러한 상피제의 연장선에서 공직자를 출신·연고 지역 외로 배치해 토착세력과의 유착과 연고주의를 차단하려는 인사 원칙이다. 경찰 역시 지역사회와 밀접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특성 때문에 오래전부터 인사·전보에서 연고지와 근무기간이 고려되어 왔다. 최근에는 총경급 간부의 동일 시·도 장기근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인사가 강화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일 시·도 경찰청에서 3년 이상 연속 근무하거나 합산 7년 이상 근무하는 것을 제한하는 기준 등이 적용되고 있다.
그 결과 장거리 전보에 따른 주거 이동, 관사 운영 예산 증가, 가족 분거에 따른 경찰관 개인의 삶의 질 저하 등 사회적·조직적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실제 경찰관서 관사는 2019년 438개에서 2023년 말 543개로 크게 늘었다. 물론 관사 증가를 모두 향피제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지역을 자주 옮겨 다니는 순환 인사정책이 경찰 조직과 현장 치안력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향피제도가 경찰공무원을 바라보는 기본 전제에 있다. 일정 기간 한 지역에서 근무하면 지역사회와 유착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공직자를 직무수행 전부터 ‘잠재적 비위자’로 의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패는 경찰관의 고향이나 연고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권한 관리가 부실하고, 정보 접근 통제가 느슨하며, 감찰과 징계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오히려 지역 사정에 정통한 경찰관이 지역의 범죄 취약지, 주민 갈등, 학교폭력과 주취폭력의 양상을 훨씬 더 정확히 파악하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주민과 쌓은 깊은 신뢰, 학교·복지기관·시민단체와의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는 단기간의 순환근무로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잦은 인사이동은 치안의 연속성을 약화시키며, 무엇보다 현행 자치경찰제의 본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치경찰제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의 관점에서, 지역에 밀착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런데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경찰 간부를 일정 기간마다 외부로 내보낸다면, 자치경찰은 이름만 ‘자치’일 뿐 실제로는 중앙집권적 순환인사의 틀에 갇히게 된다. 지역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할 자치경찰이 정작 지역과 분리되는 심각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도 이해충돌 방지와 경찰 부패 통제를 위한 철저한 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출신지와 연고지를 기준으로 삼는 광범위한 향피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국가에서는 구체적인 친족관계나 사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에서 해당 경찰관을 배제하고, 수사정보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며, 독립적인 감찰과 외부 감독기구를 통해 부패를 통제한다. 사람을 출신 지역에서 떼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행위’와 ‘이해관계’를 정밀하게 관리하는 방식이다.
우리 경찰 인사·감찰 시스템도 이제 ‘사람을 의심하는 방식’에서 ‘행위와 시스템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사정보 접근 권한을 최소화하고 접속 기록(Log)을 상시 점검·감사해야 한다. 사건 관계인과 친족·지인 관계가 있다면 사건 단위로 즉시 회피·제척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감찰의 독립성을 높이고 외부 위원의 참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경찰관을 고향에서 멀리 보낸다고 해서 회복되지 않는다. 비위가 발생했을 때 누구든 성역 없이 공정하게 수사하고, 정보 유출에 엄중한 책임을 물으며, 조직이 제 식구를 감싸지 못하도록 투명한 통제 장치를 작동시킬 때 비로소 회복된다.
향피제도는 경찰을 지역으로부터 ‘떼어놓는’ 전근대적 통제 방식이다. 반면 자치경찰은 경찰이 지역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현대적 치안 패러다임이다. 이제는 ‘어느 지역 출신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역 밀착형 치안을 구현하고 비위 행위를 정밀하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경찰 향피제도가 아니라 자치경찰이어야 한다. 지역성과 전문성을 살리는 자치경찰제를 바로 세우고 선진적 인사·감찰 체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경찰을 바꾸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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