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인구 감소와 경제 불황, 지역산업 쇠퇴, 청년 유출이 맞물리며 지역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다시 주목받는 존재가 바로 대학이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의 생존과 혁신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이 지역사회 발전에서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은 지식과 인재, 그리고 혁신을 동시에 생산하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교육을 통해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며, 산학협력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한다. 실제로 대학은 ‘혁신 활동의 중심지’이자 ‘혁신의 확산 매개체’로서 지역경제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친다.
특히 지역 대학은 단순한 인력 공급원을 넘어 지역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안전과 복지, 환경, 도시재생 등 지역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곳이 바로 지역 대학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공직에서 자치경찰 업무를 수행하며 체감한 바에 따르면, 지역 문제 해결에는 현장과 이론을 연결하는 ‘지식 플랫폼’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학은 바로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기관이다.
주요 선진국들의 우수 사례는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국과 영국, 스웨덴, 일본 등에서는 대학과 지방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지역 발전을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일부 대학은 지역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여 낙후된 지역을 창업과 문화 중심지로 탈바꿈시켰고, 미국의 주립대학들은 지역 산업과 연계한 연구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혁신의 엔진’임을 보여준다.
또 다른 주목할 사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응용과학대학(AUAS)이다. 이 대학은 COIL(협력적 온라인 국제학습)을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하여 전 세계 170여 개 대학과 협력하고 있다. 학생들은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국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무 역량을 키운다. 연간 수백 명의 학생이 글로벌 협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디지털 협업능력과 문제해결 역량이 크게 향상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지역 대학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은 어떠한가? 최근 글로컬대학 사업을 통해 지역대학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대학은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교육과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대구한의대학교는 ‘K-MEDI 실크로드’ 전략을 중심으로 교육과 산업, 국제화를 연계한 지역혁신 모델을 구축하고, 지방정부 및 산업체와 협력해 특화 생태계를 조성했다. 부산대학교는 해양·바이오 분야에서 지역 산업과 긴밀히 협력하며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고 있고, 전북대학교는 농생명 분야를 중심으로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의 성공 가능성은 단순히 ‘좋은 대학’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통합 동력은 실제로 있는지, 자체 수익모델은 있는지, 지방자치단체의 실질적인 지원이 있는지, 수도권 대체 불가능성이 있는지가 핵심 변수이다.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사업은 단순한 지역대학 지원사업이 아니라, 지역 산업·인구·연구·정주 생태계를 대학 중심으로 다시 설계하려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성공 여부는 결국 “대학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글로컬대학 사업의 진짜 성공 조건은 대학 지원사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 생존 모델로 진화하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일부 공무원들은 대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학은 이기적이다. 그리고 책임지지 않는다. 말이 너무 앞선다. 현실을 너무 모르고 순진하다“고 대학을 비판한다. 하지만 대학이 잘 새겨 들어야 할 부분이다.
이제 대학의 역할은 ’지역에 남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이 지역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설계한다면, 지역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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