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다른 공무원 조직과 달리 계급장을 달고 일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경찰을 ‘제복을 입은 시민’이라고도 부른다. 경찰 업무는 긴급성·위험성·강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경찰관들은 24시간 365일 긴장감을 유지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이러한 조직일수록 상하 위계와 명령체계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고 일관된 지휘가 가능하고, 국민에게 안정적인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찰조직이 최근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과 조직 운영상의 혼선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 국민에게 더욱 신뢰받는 강건한 경찰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필자는 경찰조직과 인사를 가르치는 경찰행정학자로서 현재 경찰이 안고 있는 문제를 조직과 인사관리의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리더십의 문제다. 현재 경찰청장 자리가 장기간 비어 있고, 최근 경찰청 수뇌부 인사에서도 경찰청장이 임명되지 않았다. 왜 경찰청장을 임명하지 않는가. 권한대행 체제는 당면 현안을 관리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조직의 미래를 내다본 혁신 정책을 수립하고 과감하게 집행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조직의 방향을 제시할 수장이 장기간 부재하면 일선 경찰은 새로운 업무를 추진하기보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에만 매달리게 된다. 더욱이 중대범죄수사청 출범과 함께 경찰과 중수청 간 수사 업무도 새롭게 조정될 예정이다. 형사사법 체계가 대대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일수록 경찰의 역할을 바로 세우고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 책임 있는 경찰청장이 필요하다.
둘째, 경찰청장뿐만 아니라 경찰청과 주요 시·도 경찰청의 핵심 보직에도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도 경찰청장과 주요 보직의 장기 공석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조직의 각 직위는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업무량과 책임, 지휘체계를 고려해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한 뒤 필요한 자리를 정한 것이다. 축구를 11명이 아니라 7명만으로 치른다면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찰조직도 마찬가지다. 지휘부와 주요 보직이 비어 있으면 남은 구성원에게 업무가 집중되고, 의사결정은 늦어지며,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경찰 지휘체계의 공백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필요한 인사를 서둘러 단행해야 한다.
셋째, 인사는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 인사는 일정한 시기와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자신의 진로와 보직을 예측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총경 승진과 전보 등 주요 인사가 예고 없이 늦어지거나 기준이 불분명하면 조직 구성원들은 업무보다 인사 동향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인사가 늦어지면 단순히 불편이 커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승진과 보직 이동을 준비하던 직원들의 긴장감과 업무 몰입도가 떨어지고, 조직 전체에 ‘열심히 일해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무력감이 확산될 수 있다.
인사는 조직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따라서 공정성·투명성·예측 가능성을 갖춰야 한다. 정기 인사는 정해진 시기에 실시하고, 인사 기준과 절차도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인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에 대한 신뢰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넷째, 탁상행정은 금물이다. 경찰 개혁은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최근 추진되는 순환근무제나 일정 기간 회식 금지와 같은 정책도 그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현장 의견 수렴 없이 일률적으로 추진된다면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순환근무는 비리 예방과 업무 경험 확대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과 업무 전문성, 개인의 생활 여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회식 역시 무조건 금지하기보다는 강요와 부당한 비용 부담을 없애고, 구성원 간 소통 방식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혁은 현장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이 납득하고 참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은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지속되기 어렵다. 오히려 구성원들의 피로감과 불신만 키우고 조직의 기강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14만 경찰은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조직 전체가 극도로 위축돼 있다.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경찰이 흔들리면 국민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찰의 위기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사건·사고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이 제 기능을 하는지, 주요 보직이 적절히 채워져 있는지, 인사가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게 이루어지는지, 정책이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제 경찰의 위기를 조직과 인사관리의 혁신으로 풀어내야 한다. 책임 있는 리더십을 세우고, 지휘체계의 공백을 해소하며,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야 한다.
경찰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다. 조직을 안정시키고, 인사를 바로 세우며, 현장 경찰관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시작된다.
경찰의 위기를 조직과 인사의 혁신으로 극복해야 할 때다.
BEST 뉴스
-
탄소 중립의 게임 체인저, 대마(Hemp)
보건학박사 김문년 전 세계는 지구 온난화 1.5℃ 한계선을 지키기 위해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Net-Zero)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산업 공정 감축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격리하는 인공적 기술(CCUS)은 톤당 100~600달러에 달... -
빨간 날보다 평범한 날이 좋은 이유
“아빠, 엄마! 저는 빨간 날이 싫어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나는 부모님께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여기서 ‘빨간 날’이란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일요일과 공휴일을 뜻한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수업이 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공휴일이면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 -
‘술 김에’ 저지른 범죄, 솜방망이 처벌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박동균(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해 온 술은 소통과 위로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적절한 수준을 넘어설 때 개인과 사회를 위협하는 흉기로 변한다. 과도한 음주는 뇌의 판단 기능을 흐리게 만들고 통제력을 상실시켜 순식간에 범죄의 길로 들어서... -
도덕성은 기본, 이젠 ‘일 잘하는 인재’를 검증하라
박동균(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개각을 계기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장관 등 고위공직자를 임명하기 전, 국회가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 정책적 소신을... -
마약과의 전쟁, 단속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박동균(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마약류 사범은 해마다 증가해 2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적발되지 않은 암수범죄까지 고려하면 실제 마약 사용과 중독 규모는 통계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심... -
명절의 웃음 뒤에 숨은 눈물, 가정폭력을 막아야 한다
박동균(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가정폭력이 늘고 있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최근 사회부 기자들이 필자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고 통계상 가정폭력은 분명 증가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경북도 내 가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