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의 시인 당경은 “정적이 곧 아침 해와 같고, 외로움이 도리어 스승이 된다(靜寂如朝 孤獨爲師)”고 했다. 홀로 있는 시간의 철학적 가치를 읊은 명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외로움은 신선 같은 유유자적함이 아니다. 사회적 단절과 절망이 뒤얽힌 ‘삶과 죽음의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을 매년 8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세계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외로움은 우울증과 심혈관질환, 치매 위험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자살과 고독사, 범죄 노출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
흔히 외로움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명심보감』에 “호랑이 그림은 뼈를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아는 것은 속마음을 알기 어렵다(畫虎畫皮難畫骨 知人知面不知心)”고 했다. 고소득의 직업과 화려한 명예를 가진 이들도, 1천만 시대를 돌파한 1인 가구 속 청년과 중년들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깊은 고립감에 아파한다.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24시간 연결되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졌다.
극단적 고립의 끝은 참혹하다. 사회적 단절 속에 세상을 떠난 2023년 대한민국 고독사 사망자는 3,661명에 달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립감이 타인을 향한 분노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고립 속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 잔혹 범죄를 저지른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이나, 극심한 외로움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비극을 선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단절된 외로움이 어떻게 사회적 참사로 비화하는지 보여주는 서글픈 단면이다.
고립된 이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쉽고, 반대로 폭발적인 범죄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력한 ‘안전 의제’가 된 이유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외로움을 국가적 재난으로 다루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장관’을 신설했고, 일본 역시 ‘고독·고립 대책 추진법’을 제정해 미용실·상점 등 일상 공간을 사회적 연결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지자체 역시 AI 안부 전화나 고독사 예방 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여전히 위기 가구 발굴이라는 사후약방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홀로 서는 나무는 숲을 이룰 수 없다는 ‘독목불성(獨木不成)’이라는 말처럼, 이제 국가가 체계적인 공동체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외로움의 문제를 가족과 이웃의 선의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외로움은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나타난 문제인 만큼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중앙정부는 외로움을 정기적으로 측정할 국가 지표를 신설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센터와 도서관 등을 누구나 찾아와 관계를 맺는 열린 공간으로 바꾸고, 경찰과 소방, 복지, 민간이 어우러진 조기 발견 네트워크를 가동해야 한다. 함께 식사하고 운동하며 배우고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노인과 장애인을 일방적인 복지 수혜자로만 보지 말고 지역사회 활동의 주체로 참여시킬 필요도 있다. 이런 점에서 생활치안 중심의 자치경찰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행정복지센터와 파출소, 소방, 의료기관, 사회복지기관, 아파트 관리사무소, 종교기관과 시민단체가 협력해 고립 위험이 큰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는 연결망을 구축해야 한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와 인권을 철저히 지키면서 당사자의 동의와 존엄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인공지능 안부 전화와 스마트 기기, 반려로봇 등 디지털 기술도 활용할 수 있지만, 기술이 인간의 따뜻한 말과 손길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보조수단이어야 한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사람은 쓰임새가 정해진 도구가 아니라고 했다. 국민을 단순한 복지 수혜 대상이 아닌 사회적 관계의 주체로 세워주는 정책이 시급하다. “요즘 괜찮으십니까”라는 국가와 이웃의 따뜻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마지막 밧줄이 될 수 있다.
외로움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늘 많은 사람과 어울리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혼자 있어도 고립되지 않고, 어려울 때 손을 내밀 수 있으며, 언제든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국가가 외로운 국민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바짝 다가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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